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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Med Educ > Volume 24(3); 2012 > Article
의예과 인문학 교육에서 ‘치유하는 글쓰기’의 적용 예

Abstract

There has been a recent tendency to attach special importance to writing education. Books on 'writing to heal' are being written in or translated into Korean. According to these texts, writing is a valuable tool for internal healing, depending on the mode of application. Writing can have positive effects and give hope to an individual or group, but it can also be a source of frustration and despair. Based on the distinct effects of writing, we cannot overemphasize the significance of writing education. Writing is generally taught during a premedical course that targets students who will eventually practice medicine. Many reports have examined immorality in medical students and health care providers, which is a reason that writing education is important for medical systems. 'Writing for Healing' is open to freshmen at Yonsei University Wonju College of Medicine. The aim of this subject is to help students identify and acknowledge internal diseases to lead a healthier life and eventually become positive and responsible health care providers. However, in addition to the vague definition of what 'healing' is, the concept of 'writing for healing' has not been defined. This paper attempts to define the concept of 'writing for healing' and considers what influences it can have on a humanities curriculum in medical colleges.

서론

인문학의 위기와 함께 찾아온 인문학에 대한 절실함은 교육계를 비롯하여 의료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새로운 조류이다. 현재 인문학은 의료인문학, 인문사회의학, 서사의학, 인문치료 등 다양한 이름으로 의학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러나 1910년대에 플렉스너의 의학교육 개혁 이후 약 한 세기에 걸쳐 과학중심의 의학이 발전해 왔고, 20세기 말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생명과학이 의학 발전을 한층 배가시키는 일을 목격한 의학계 종사자들에게 이와 같이 익숙지 않은 학문의 이름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본고 또한 이러한 흐름의 한편에서 있는 글이다.
강원대학교에 인문치료사업단이 설립되는 등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인문치료에 대한 관심은 이제 글쓰기 행위에 있어서도 치유적 관점에서 접근하고자하는 움직임으로 확산되고 있다[1]. 실제 국외뿐 아니라 국내에도 치료를 위한 글쓰기 관련 번역서와 저서들[2]이 꾸준히 출판되면서 여러 고민과 해법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의과대학을 위시한 국내 교육 환경에서는 여전히 글쓰기 교육에 대해 일정한 틀을 갖추지 못한 채 정책의 변화에 따라 교육 과정이 개설되었다가 폐기되기도 하고, 담당교수의 관심, 능력, 열성에 따라 교육 내용이 결정되기도 한다.
항상 과학적 증명만이 옳고 그름의 척도가 될 수는 없지만, 플라시보의 효과가 내인성 오피오이드(opioid)계를 통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사례[3]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가 흔히 비과학적이라 추정하는 일반적 사고들이 실제로는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인문학에 대한 학계의 편견이나 사회적 차원의 지원들도 문제지만, 더 문제시되는 것은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하는 방법론의 부재일 것이다. 뚜렷한 교육 목표 없이, 맹목적으로 좇기만 하는 교육은 인문학에 대한 불신만 자초할 뿐이다.
본고는 이러한 고민들을 공유하고 논의하려는 글이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의예과 수업에서 현재 활용하고 있는 몇 가지 교육 사례를 소개하며 인문학교육에 대한 다양한 활용방안과 발전 가능성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개성을 찾아가는 교육

예부터 교육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인류의 큰 숙제였다. ‘한서(漢書)’에서 이르기를 “황금을 바구니에 가득 채워주는 것이 자식에게 경서 하나를 가르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주는 것이 기예 한 가지를 가르치는 것만 같지 못하다(黃金滿籯 不如敎子一經 賜子千金 不如敎子一藝).”고 하였다. 이렇듯 자식이나 후학에게 큰 재물을 주는 것보다 경서나 기예를 가르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마음이자 교육철학이다. 그러나 기존 것에서 더 큰 재물이나 결과를 채울 수 있는 교육을 원하는 것 또한 다수의 공통된 심리이며, 이는 현재 대한민국 대학교육에 만연해 있는 성과 위주의 교육정책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미래에 인간의 질병과 건강을 책임질 수 있도록 의료인력을 양성하는 의과대학이라고 해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2011년 한 해 동안 벌어진 국시 문제유출사건이나, 의대생 성추행사건, 수면마취제를 통한 환자 성폭력사건 등 심심찮게 매스컴에 보도되는 의대생들과 의료인들의 부도덕한 사건을 대할 때마다 의학교육과정에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 내용의 필요성을 확인하게 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특정 공동체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리고 그 집단적 요소들의 합이 보수적 편견으로 지탱되어 개인에 불이익을 주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개체는 도덕적·정신적으로 말살되며 그와 더불어 사회의 윤리적·정신적 진보의 유일한 원천도 봉쇄된다고 한다[4]. 그에 비추어볼 때, 의료 시장도 점차 비대해지면서 공동체의 목표와 이익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서는 큰 문제를 삼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는 듯하다. 그러나 점차 위법 정도가 심각한 수준으로 확산될 뿐만 아니라 책임소재가 대학의 테두리 안으로까지 침투되면서 의사의 도덕성이나 의료윤리에 대한 사안들이 사회적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의료계만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식료품들의 비위생적인 가공·유통 형태와 비양심적인 상점·업소들의 영업 형태, 더불어 최근 불거진 스포츠 경기 조작사건을 통해서도 사회적으로 윤리의식에 대한 부재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알 수 있다.
본래 사회의 윤리의식은 개인이 속한 집단의 공동 목표이자 구성원 간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다. 그러므로 구성원들의 ‘개성화’가 아닌, ‘모방을 중요시하는 인간의 본성’[4]과 ‘이를 추구하는 교육환경’은 사회의 윤리성 회복에 있어서 공동체가 지양해야 할 부분이며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 할 수 있다.
  • “개성화(individuation)란 진정한 개성을 실현하다는 뜻으로, 그 사람 자신의 전부가 된다는 의미이다. 개성화는 개인지상주의(individualism)와는 다르다. 개인지상주의는 집단적 고려나 의무에 대하여 고의적으로 자기의 개인적 특수성을 강조하거나 내세우는 것이지만, 개성화는 자신이 되게 하는 가능성(Archetypus des Selbst)에 자아의식이 받아들여 실천에 옮기는 능동적인 행위이다[5].”

마치 맹목적으로 동일한 인격체를 생산해 내는 듯, 개성화를 상실한 교육환경은 대상과의 관계맺음과 사유(思惟)의 문제를 도외시하였고, 이는 공동체로 하여금 윤리성이라는 문제를 다시금 천착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사회의 절실함은 결국 인문학으로의 관심 전환을 유도하며 다양한 인문학적 방법론을 강구하게 만들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설립되어 활동하고 있는 대한의사학회, 한국의료윤리학회에 이어 2000년대 들어서 의학교육학회 산하 의료인문학 분과의 활동상황이나 한국의철학회의 창립(2007), 문학의학학회의 창립(2010) 등과 같이 의료인문학 관련 학술활동이 활발해지고,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의학교육평가항목에서 의학교육을 위한 커리큘럼에 인문사회의학 과목에 대한 내용이 점점 강화되어가고 있는 것은 의학교육에 인문학적 내용을 도입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의학교육 평가에서는 의학과만 평가할 뿐 의예과 교육 내용에 대해서는 평가를 하지 않고 있으나, 여러 의과대학들이 의예과 교육에도 인문학 관련 내용들을 점차 강화해가고 있다.
주지하듯, 인문학은 건강한 관계맺음과 온전한 사유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다. 따라서 일방적이 아닌 상호 간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하고, 자신이 속한 집단과 주변의 문제를 사색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더불어 개성화에 대한 추구는 상호 간 능동적인 실천과 집단의 다양성 측면에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작용원리가 인문학 본연의 모습이며, 인문치료 이론의 근간이다. 그동안 비과학적으로 치부되던 인문치료도 여러 심신의학 전문가들에 의해 임상실험이 이루어지면서 점차 이론적 힘을 싣고 있다[6]. 그들은 장애를 완화하고 해소하는 데 심리치료뿐만 아니라 인지행동치료도 과학적으로 효과가 있음을 주장하고 있으며 그러한 인지행동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글쓰기 치료와 같은 정적인 기법이 매우 중요함을 밝히고 있다. 이는 인간의 다양한 정신병리를 약물하나만으로는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이며, 마치 고혈압, 당뇨 같은 성인병에 식사요법과 운동을 병행하듯 뇌과학이나 정신과학에서도 자신을 통찰하는 인문치료를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1].
인문학에서 치유는 ‘개성화’, 곧 ‘자기실현(Selbstverwirklichung)’의 과정이므로 반드시 개인을 완전(Vollkommenheit)하게 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온전(Vollständgkeit)하게 할 수 있다[5].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한 의미의 ‘그 사람 자신(Individualität)’이 되게 하며,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이다.

글쓰기로 치유하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대인과의 관계나 여러 사회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것을 통하여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러나 인간이 공동체라는 집단을 이루고 생활하며 완성한 철학, 종교, 예술 등이 본래 자아에 대한 사유 내지 공동체의 치유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아도 우리는 오랜 기간 여러 대상과 관계맺음을 통해 치유를 받고 또 치유에 대한 노력을 하고 있었음을 인식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세계관과 사회성 형성을 위한 실천적 과정이며, 어쩌면 이것이 인문학 본연의 모습일 수도 있다. 현대의학에서도 점차 인간의 관계맺음을 통한 치유의 과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여러 임상실험의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 “어떤 외부적인 환경이 신체작용을 활성화하거나 마비시킬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존재하는 생물학적 체계를 ‘동기부여 체계’라 하며, 그의 연료라 할 수 있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dopamine), 내인성 오피오이드(opioid), 옥시토신(oxytocin) 등을 통하여 인간은 생물학적인 특징 내지는 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3].”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바람,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전망, 긍정적인 배려의 체험, 진정한 사랑의 경험이 이러한 동기부여 체계를 활성화시키는 반면, 인간으로 하여금 오랫동안 사회적인 접촉을 끊게 하면 뇌에 있는 동기부여 체계가 생물학적인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동기부여 체계가 추구하는 본래의 목표가 사회적인 결속이며 성공적인 인간관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상과 관계맺기는 인간 본연의 관심사이자 핵심목표라 할 수 있다.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 부모라는 이름의 대상과 관계를 맺는 것, 그리고 점차 성장하여 가족 밖의 다른 집단들과 접촉하는 행위들, 이 모든 것이 인간을 하나의 온전한 성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교육이자 치료의 과정인 것이다.
글쓰기는 이러한 공동 목표를 실현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정적인 기법이면서도 역동적인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글쓰기는 보통 혼자서 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 목적과 결과에 초점을 둔다면 오히려 혼자가 아닌 다수가 관련을 맺는 행위에 가깝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불특정 타인과 손쉽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social networking service (SNS) 소통방식은 글쓰기를 더 이상 개인의 틀 안에 가둘 수 없게 만들었다.
SNS를 비롯한 현대의 디지털화된 글쓰기의 강점은 참으로 다양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과 적은 비용을 들여 자신의 글을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으며, 다자간 소통방식을 통해 손쉽게 독자들의 반응과 비판을 들을 수 있다. 또한 기술적인 면에서는 배경에 대한 설명을 사진 등의 이미지 파일이 대신하고 분위기에 대한 묘사를 영상이나 음원으 로 메워주면서, 지면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내용을 전달해야하는 글쓰기의 한계점을 한 단계 뛰어 넘었다.
글쓰기는 이제 인터페이스의 변화를 통해 수많은 대중들이 검색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다자간 소통방식의 형태로 진화·발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익명을 이용한 맹목적 비난과 왜곡된 여론몰이라는 사회적 문제점을 야기하며 개인으로 하여금 글쓰기 행위를 과정이 아닌 결과에 치중하게 하였고,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Gadamer [7]의 설명을 따르자면, 개인은 사회의 범위 안에서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가고 그 세계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불안이란 세상의 방대함과 낯섦에 갑자기 노출되었을 때 느끼는 답답함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앞서 설명한 바, 개인은 SNS를 통해 불특정 타인과 손쉽게 접속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데이터 스모그(data smog)로 인하여 대상과 온전한 관계를 맺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소통 수단의 발달이 그 질의 영역 차원까지 발전시키지는 못했음을 의미한다.
  • “사람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전파하기 위해 그들이 점차 자신의 메시지들을 보다 자극적이고 흥분시키는 더미들로 포장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쟁이 열기를 더해 감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하기 위해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하고 있다. 우리는 더 크게 말한다. 더 많은 색깔을 입혀라. 더 많이 노출하라. 충격적인 것들을 말하라[8].”

수많은 상호작용 속에서 나타나는 글쓰기는 개개인으로 하여금 이제 답글을 기대하는 설렘이 아닌 그 평가에 대한 불안감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극단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목소리를 크게 하고 온갖 자극적인 색깔들을 입히지만, 단지 데이터 스모그만을 짙게 만드는 행위가 될 뿐이다.
글은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하나의 표현 수단이며,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행위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대상에게 제대로 말을 걸고 온전히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다[9]. 따라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상대를 고려하고, 대상과 관계맺기를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대학에서 진행되는 글쓰기 수업 또한 단순히 개개인의 문장력을 기르는 훈련이 아닌 공동체 속에서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의예과 교육과정 중 ‘의료인문학 I·II·III’과 ‘글쓰기’, ‘특별활동’ 등의 수업들은 이러한 글쓰기 교육의 중요성을 표면에 드러내고 있다. 대학생활 내에 경험하는 모든 대상과 활동들을 텍스트화하여 주변 세계에 대한 이해와 폭넓은 사고를 유도하며, 훗날 의료업에 종사할 학생들로 하여금 의료인으로서의 마음가짐과 인성의 측면까지 조망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계획하였다(Table 1).
  • “‘특별활동’ 수업은 학생들이 의예과 2년을 인생에서 스쳐 지나가는 시기로 보내지 말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개설한 과목이다. 더불어 학생들에게는 1년을 노력해야 학점을 따는 과목이기도 하다. 1, 2학기를 합쳐 1학점이며 1년간 자기계발과 관련한 모든 활동과 교내외 행사참여, 봉사활동 등을 점수로 환산하여 학점을 부과하고 있다. 학생들은 점수를 받기 위해 행동으로 옮긴 내용을 소감문으로 작성해야 하지만, 이는 진위를 판별하기 위해서가 아닌 기억 속에 많이 남도록 하는 것과 대학생들의 글쓰기 훈련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10].”

수업을 듣는 학생들 모두가 직접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고민하면서 스스로 문제의식을 심화시켜 나가고 있으며, 느낀 점을 글로 서술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효율적으로 정리하여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있다. 정규 수업시간 외에는 전담강사가 개별 글쓰기 상담을 실시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글쓰기 능력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학 수업 내 글쓰기 교육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특히, 의예과 글쓰기 교육과정은 그 대상이 일반인이 아닌 훗날 의료업에 종사할 학생들이므로 절실함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글쓰기의 교육과정도 학생들이 직접 수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세분화(‘문학적 글쓰기’, ‘과학적 글쓰기’, ‘철학적 글쓰기’, ‘치유하는 글쓰기’)함으로써 ‘치유하는 글쓰기’가 과목의 하나로 개설되었다(Table 2).
‘대학 글쓰기’는 단순히 전공에 필요한 학술적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만이 아닌 인문학적 사유에 대한 저변 확대와 실천적 활동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수업 목표를 바탕으로 글의 치유적 기능에 초점을 맞춘 것이 ‘치유하는 글쓰기’이며, 이는 인문치료에 대한 학계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한국 인문치료사업단이 내린 인문치료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인문치료란, 인문학적 정신과 방법으로 마음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위해 인문학 각 분야 및 연계 학문들의 치료적 내용과 기능을 학제적으로 새롭게 통합하여 사람들의 정신적·정서적·신체적 문제들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이론적·실천적 활동이다[11].”
사회적으로 정신 치유에 대한 관심이 증가되자 기존의 의학치료와 심리치료 외에도 음악치료, 미술치료, 놀이치료 등 테라피(therapy)로 통칭되는 많은 치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인문학 내에서도 어문학 배경의 문학치료와 독서치료, 언어치료가 이미 활성화되었으며, 철학상담 혹은 철학치료가 1980년대부터 독일에서 아헨바흐(Gerd B. Achenbach)를 중심으로 시작되어 미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최근 역사학계에서도 정신분석학적 역사학 등을 토대로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는 움직임들이 논의되고 있다[11].
의예과 수업과정 중 하나인 ‘치유하는 글쓰기’는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개설한 과목은 아니지만, 훗날 의료업에 종사할 학생들로 하여금 글쓰기(인문학)라는 학문이 인간의 치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일련의 수업과정을 통하여 깨닫게 하고 있다. 따라서 교수자의 피드백도 단순히 글쓰기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내적 질병을 보듬으며 보다 건강하고 온전한 사유를 돕는 목적을 가진다.

치유의 기술(記述)

우리에게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고 우리를 외적으로 포장하고 있는 집단정신의 인위적인 단면을 Jung [4]은 페르소나(persona)라고 불렀다. 다른 사람이나 자기 자신이 개별적이라고 믿게 만드는, 마치 개성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장치인데, 개인의 내면에는 이러한 인격적 가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은 페르소나를 통해 다양한 친교를 맺으며 사회생활을 영유하지만, 이는 진정한 의미의 관계맺음이라 할 수 없다. 또한 페르소나의 과도한 팽창은 결국 개인의 고독과 소외라는 일종의 심리장애로 표출되고,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소통의 부재로 표면화된다. 가면 속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역할극들이 개인을 점점 고립된 존재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역할극에 심취한 개인에게 온전한 사유와 건강한 관계맺음을 바라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약 그 개인이 환자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인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앞서 제기했던 일련의 사건사고들은 이러한 배경과 연관 지어 설명할 수 있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관계맺음, 곧 자기실현의 과제는 이렇듯 절실함에서 시작한다.
‘치유하는 글쓰기’(의예과 1학년)의 학습목표는 개인과 사회의 ‘그림자’ 노출이다. 학생들은 이러한 학습 목표를 중심으로 필수과제인 ‘자기소개서’와 ‘패러디(parody)’를 서술해야 한다. 먼저 개인의 ‘그림자’ 노출은 ‘자기소개서’ 쓰기로 대변할 수 있다. 일반적인 ‘자기소개서’라면 오히려 개인의 ‘그림자’를 감추는 작업일 수 있겠지만, 수업에서 다루는 ‘자기소개서’는 몇 가지 특별한 항목이 있어 이 같은 페르소나의 과도한 팽창을 견제한다. 그 한 가지는 ‘자기소개서’의 내용 안에 자신의 인생이 유독 서러운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이 같은 서러움 속에서도 지금껏 힘을 내고 살아가는 원인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다. 작성한 내용은 반드시 수업시간 중에 공개 발표를 하도록 독려하지만, 원치 않을 경우 문제가 될 만한 내용들에 한하여 비공개를 허락하고 있다.
  • “심리학적인 의미에서 그림자(shadow)란 바로 ‘나(自我, Ich, Ego)’의 어두운 면, 즉 무의식적인 측면에 있는 나의 분신이다. 자아의식이 강하게 조명되면 될수록 그림자의 어둠은 짙어지게 마련이다[5].”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그림자’가 존재한다. ‘자기소개서’는 이러한 개인의 ‘그림자’를 양지로 노출시키는 작업이다. 학생들의 발표 내용은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로 도배되지만, 발표시간 내내 청중들을 웃음 짓게 하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개인의 ‘그림자’가 노출될수록, 그리고 노출된 내용이 개인에게 간절할수록, 청중들은 무의식적으로 동일한 감정적 반응을 보이게 된다.
  • “사람들은 특정한 감정에 속하는 태도를 무의식적으로 모방하거나 재생산한다. 말하자면 전염병처럼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즉석에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동일한 감정적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말이다. 이 같은 감정의 전이를 전문용어로 ‘정서적 전염(emotional contagion)’이라 한다[6].”

녹화방송이었던 공중파 모 예능프로그램에서 사회자가 출연자들에게 각자 이 방송이 전파를 타고 방영될 때쯤 그 방송을 보게 될 자신에게 영상편지를 보내라는 권유를 했는데 출연자 중 한 명이 “이제 그만 술 마시고 빨리 들어가 자라.”는 농담 섞인 말을 남긴 적이 있다. 해당 출연자가 유독 무명생활이 길었던 탓이었는지 씁쓸한 웃음 뒤에 선명한 상처들이 배어났다. 자기만큼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자기소개서는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대답이며, 개인은 이러한 셀프 인터뷰(self interview)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그림자’를 청중 앞에 노출시킨다.
또 다른 수업 목표인 사회의 ‘그림자’ 노출은 원작의 ‘패러디’쓰기이다. 대부분의 문학이론가들은 패러디를 희랍어인 ‘parodia (countersong)’라는 명사에서 그 어원을 찾는데, ‘para’는 텍스트들 사이의 ‘대조’ 또는 ‘상반’을 뜻하는 것 외에 ‘일치’ 또는 ‘친숙’의 두 개념을 가지고 있다[12]. 따라서 수업에서 다루는 ‘패러디’는 단순히 원작의 결말 바꾸기나 소재 차용이 아닌, 가장 현실과 친숙한 소재나 주제를 가지고 청중들의 웃음을 유발해야 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패러디’의 원작들은 당대 사회나 그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을 투영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 사회의 모습과 별반 다름이 없다. 학생들 스스로가 사회의 가장 어두운 부분까지 드러내고 서술하려 노력함에 따라,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며 사회의 지식인이자 의료인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더불어 훗날 맞닥뜨리게 될 자신의 환자들이 단순히 질병으로만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그들이 진정으로 느끼는 아픔과 상처가 무엇인지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 “패러디는 단순히 원작의 품격을 떨어뜨림으로써 익숙한 양식을 비난하는 것뿐만 아니라 원작과 비평적 거리를 유지한 채 원작에 대한 지속성과 변화를 동시에 유도하는 텍스트 상호간의 관계 양상까지도 패러디의 영역에 포함된다[13].”

한편, 개인이 서술한 ‘패러디’는 별도의 동료 점검시간을 통해 타 학생들과 공유하게 된다. 이 시간을 통하여 학생들은 동일한 작품일지라도 개인의 시각차에 따라 다양하게 재해석할 수도 있다는 특별한 경험을 한다. 또한 동료들의 조언에 따라 글을 수정하면서 글쓰기가 개별 작업이 아닌 공동의 작업이며 독자와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패러디’ 수업의 마지막 과정인 교수자의 ‘패러디 강평’은 학생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글들을 교수자가 직접 읽으며 글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하는 시간은 대학수업의 경직된 분위기를 해소하고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한다. 사회적 공감의 아주 특별한 형태는 함께 나누는 웃음이라고 한다[3]. 이는 서로를 연결해주기 때문인데, 글쓰기 역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이러한 공감대 형성이다. 작가는 독자와의 소통을 염두하며 글을 쓰고, 독자는 그러한 글에 감동을 받는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학술적이고 경직된 글쓰기만을 강요받아왔다. 따라서 항상 ‘개인’ 중심적이며 주변에 대해서는 늘 뒷전이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이러한 주변에 대해 사유하고 관계를 맺는 작업이다. ‘치유하는 글쓰기’는 특화된 글쓰기 기술이 아니다. 본래 글쓰기 자체에 있는 치유적 기능을 발견하고 실천에 옮기는 능동적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능동적 행위는 주변 세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혼자가 아닌 ‘함께’일 때 삶 속의 편안함을 만들어갈 수 있으며,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 “우리가 끊임없이 여러 사물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것을 끊임없이 만들려고 하고,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관심’ 영역 안에서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이런 식의 삶의 방식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만든 세계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7].”

치유란 개념의 모호성으로 인해 그 방법론에 대해서도 회의를 느낄 수 있겠지만, 다양한 인문학적 방법론을 통하여 진정으로 치유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현재 의예과 인문학 교육이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생각한다. 치유는 의사 혼자만의 기술이 아닌 환자와 함께 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게 하고, 사색을 통해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며, 글쓰기를 비롯한 인문학이 개인의 온전한 사유와 건강한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 이 모두가 의예과 교과과정 안에서 우선해야 할 교육 과제이며, ‘치유하는 글쓰기’는 이를 위한 좋은 도구가 될 것이다.

결론

지금까지 의예과 인문학교육의 필요성과 함께 글쓰기 교육의 나가야할 방향에 대해 모색해 보았다. ‘치유하는 글쓰기’를 포함한 인문학 교과과정들이 의예과 교육이라는 큰 밑그림 가운데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현대사회와 의학의 보이지 않는 간극들을 많은 부분 공감하고 치유할 수 있는 역할들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한다. 본고는 이러한 작은 바람에서 출발한 것으로, 세분화하고 특성화시킨 글쓰기 교육에서 그 가능성을 찾고자한 것이다.
사회의 건강하지 못한 분위기 탓인지, 언제부터인가 ‘치유’란 단어가 대중에게 익숙한 개념이 되었다. 의학이나 교육계뿐만 아니라 언론, 심지어 예능프로그램(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까지 ‘치유’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에 대한 활용법들이 고민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치유는 의학에서 말하는 치료의 개념과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벗어난 공간에서 치유를 발견하고 실천하려는 것이다. 때로는 가수들의 경연을 통해 노래의 진정성과 감동을 느끼게 하고, 연예인들의 진솔한 인터뷰와 그들의 역동적인 삶을 비추어 청중 스스로의 인생까지 뒤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는 것, 멘토(mentor)의 강의를 통해 사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치유의 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치유는 온전함을 획득하는 작업이다[9]. 따라서 ‘치유하는 글쓰기’도 글을 통해 온전함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그러한 마음가짐을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이다. 글로써 자신의 ‘그림자’를 당당히 노출시키고, 타인과 소통하며 온전함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인문학만의 매력이다.
많은 의학도들이 꿈꾸는 전인치료(全人治療, Holistic Medicine)는 먼저 그들의 건강한 배움과 실천에서 비롯된다. ‘치유하는 글쓰기’를 비롯한 다양한 인문학 수업들을 통해 학생들 스스로가 치유의 개념에 대해 고민하며, 훗날 환자의 내적 질병까지 보듬을 수 있는 의료인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Table 1.
The Subjects Which Use Writing as a Evaluative Tool during Premedical Course at Yonsei University Wonju College of Medicine
Subjects Class code Lecturer Hours Credits Contents
Medical humanities I Essential A full-time professor 2 for 16 wk 2 Introduction of medicine on the basis of medical history
Medical humanities II Essential A full-time professor 3 for 16 wk 3 To consider what kind of medical doctors are desirable on the basis of literature and art
Medical humanities III Essential A part-time instructor (philosopher) 2 for 16 wk 2 Introduction and discussion of medical development and future medicine on the basis of philosophical view
Extracurricular activities I Essential Director, department of premedicine 1 for 32 wk 1 Students have to write all of their activities
Extracurricular activities II Essential Dean of student affairs 1 for 32 wk 1 Students have to write all of their activities
Table 2.
The Subjects of Writing during Premedical Course at Yonsei University Wonju College of Medicine
Subjects Class code Lecturer Hours Credits
Writing in View of Literature Selective A part-time instructor (writer) 4 for 16 wk 3
Writing in View of Philosophy Selective A part-time instructor (philosopher) 4 for 16 wk 3
Writing in View of Science Selective A part-time instructor (scientist) 4 for 16 wk 3
Writing for Healing Selective A writer at medical education unit 4 for 16 wk 3

Students can select one of the subjects among four of writing class at first term during premedical course.

REFERENCES

1. Chae YS. Healing in writing. Daegu, Korea: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2011.

2. Pennebaker JW. Writing to heal: a guided journal for recovering from trauma & emotional upheaval. Lee BH, translator. Seoul, Korea: Hakjisa; 2007.

3. Bauer J. Prinzip Menschlichkeit. Lee MO, translator. Seoul, Korea: Ecolivre; 2007.

4. Jung CG. Persönlichkeit und Übertragung. Jung CG, translator. Seoul, Korea: SolBook; 2004.

5. Lee BY. Analytic psychology: C. G. Jung's thoughts on mind. 3rd ed. Seoul, Korea: Ilchokak; 2011.

6. Bauer J. Warum ich fühle, was du fühlst: intuitive Kommunikation und das Geheimnis der Spiegelneurone. Lee MO, translator. Seoul, Korea: Ecolivre; 2006.

7. Gadamer HG. The enigma of health: the art of healing in a scientific age. Lee YS, translator. Seoul, Korea: Momgwamaeum; 2002.

8. Shenk D. Data smog. Jeong TS, Yoo HL, translators. Seoul, Korea: Minumsa; 2000.

9. Park MR. Writing for healing. Seoul, Korea: Hangyeorye; 2008.

10. Yeh BI. I'm sorry for not taking care of your premedical course. Seoul, Korea: Cheongnyeonuisa; 2011.

11. Kim SH, Kim IJ, Um CH, Yoo KH, Yoo KS, Yoon IS, Lee MY, Lee YD, Lee YE, Lee CJ, Jung RK, Jung SM, Choi BW, Heo JH. The theory and principle of humanities therapy. Chuncheon, Korea: Sanchaek; 2011.

12. Hutcheon L. A theory of parody: the teachings of twentieth-century art forms. Kim SG, translator. Seoul, Korea: Munye; 1992.

13. Song KB. World of parodies and contemporary fiction. Seoul, Korea: Gukhakjaryowon;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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