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일차 진료의사(primary care physician)란 미분화된 건강 문제를 가진 사람이 최초로 접하는 의사로서 진료 범위를 해부학적 장기나 진단명, 원인을 찾는 데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의학적 상태를 지속적으로 돌보는 의사를 의미한다[
1]. 우리나라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의 교육은 이러한 일차 진료의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Miller [
2]가 제시한 평가 피라미드 모형에 따르면 단순한 지식, 정보를 수집하고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 행동이나 술기로 연결시키는 능력, 환자에게 행하는 실제 진료 행위를 평가하는 4단계로 평가 수준을 나눌 수 있다. Epstein & Hundert [
3]은 임상적 역량(clinical competence)이란 진료를 통해 개인과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대화 방식, 지식, 술기, 임상추론, 감정, 가치관 등을 반영하며 이는 기본 지식, 윤리 의식, 술기 등을 토대로 교육을 통해 훈련되는 것이라고 했다.
최선답형(multiple choice question, MCQ) 지필고사는 기본 지식과 문제해결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유용한 방식이나 반면 행동 영역을 다루기에는 한계점이 있다. 행동 영역이란 임상 술기를 행하는 것, 적절한 환자-의사 관계를 구축하는 공감능력, 대인 관계 맺기 등을 포괄하는데 환자-의사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었을 때 치료 성과가 좋아진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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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 구미를 중심으로 표준화 환자(standardized patient, SP)를 이용한 교육 체계를 개발하였고 의사 소통술이나 면담기술의 교육을 통해 환자 중심 면담 방법을 교육하고 SP, 모형 등을 통해 행동 영역을 평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98년 진료수행시험을 미국의사면허 2단계 시험(U.S. medical licensing examination)으로 도입하였고 의과대학에서는 이 결과를 졸업 요건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7]. 지필고사 위주로 운영되던 한국 의사면허시험에서 평가의 영역 중 태도와 수기 영역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2010년도 시험부터 실기시험을 도입하여 평가 영역의 균형을 추구하였다[
8]. 그 후로 한국 의과대학에서는 임상진료시험에 대비하여 의사국시 실기시험 준비교육과정을 보강했을 뿐 아니라 SP를 활용하여 환자-의사 상호작용이나 의료면담교육을 저학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의과대학생들은 1학년부터 2학년에는 기초 및 임상의학 지식의 성취도를 지필고사를 통해 평가 받는다. 이 시기에 행동 영역에 대한 교육 및 평가는 SP를 통해 이루어진다. 3학년에는 핵심과목에 대한 임상실습을 하고, 최종 학년인 4학년에 진입하여 비핵심 과목에 대한 실습을 한다. 의사국가고시 실기시험 응시 전까지 의학 지식과 임상진료능력을 평가하는 여러 번의 진단고사를 거친다. 학생들이 4학년에 진입하여 치르는 임상진료시험(clinical performance examination, CPX)은 향후 임상진료능력을 어떻게 향상시켜 국시에 합격 가능성을 높일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진단고사의 목적으로 시행되는 경우가 많다. 대한가정의학회 전문의 자격시험에서 MCQ 지필고사 성적과 CPX 성적 간의 상관관계를 알아보았다[
9]. 인지 영역 평가시험인 필기 MCQ 성적과 슬라이드 MCQ 성적 간의 상관계수는 높았으나, 행동 영역 평가인 CPX 총점은 필기 MCQ 성적 및 슬라이드 MCQ 성적과는 상대적으로 약한 상관성을 보였다. 실기시험 도입 전 의과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CPX 시험 성적은 필기시험 성적과 뚜렷한 상관 관계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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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실기시험이 의사국가고시에 도입되면서 여러 학교들이 임상진료시험을 대비하여 저학년부터 환자중심 진료능력을 배양하고 여러 번의 진단고사 성적을 졸업 사정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임상진료시험 성적을 예측하는 요인이나 상관성 분석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
본 연구는 핵심과목 실습을 완료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서울․경기CPX컨소시엄을 통해 2015년 2월 시행한 4학년 CPX 진단고사 성적을 다른 유형의 과거 성적과 비교 분석함으로써 의사실기능력의 결정 요인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또한 CPX 성적이나 환자-의사 상호작용 성적 부진에 사전 성적 중 어떤 요소가 의미 있는 영향을 주는지 밝히고자 하였다.
고찰
의학지식을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적용하는 것은 각각 다른 영역에 속하므로, 그 훈련과 평가가 달라야 한다. 고전적인 지필고사를 통해서는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에서 교육 목표로 삼고 있는 일차의료인을 양성하는 데 한계가 있음이 지적되면서, 의학적 지식과 임상능력을 동시에 평가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들이 이루어져왔다.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 4학년 학생은 1, 2학년 때 기초 의학 지식을 습득한 것을 토대로 3학년에 핵심과목에 대한 임상실습을 마친 상태로서 각종 진단고사와 진급 사정 평가를 접하게 된다. 이들은 실제 진료 현장에 투입되어 임상능력을 발휘하기 전 최종 단계에 있다는 점에서 4학년 진입 시 치르게 되는 CPX 진단고사 성적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이에 본 연구에서 저자들은 핵심과목 임상실습을 갓 마치고 4학년에 진입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CPX 진단고사를 실시하여, 이들의 과거 학업성취도 중 인지 영역으로 대변되는 1, 2, 3학년 평점 평균과 임상의학종합평가 성적, 그리고 행동 영역으로 대변되는 1, 2학년 환자-의사 상호작용 점수, 객관구조화진료시험 점수, 3학년 임상실습 CPX 진단고사 점수 중에서 4학년 CPX 진단고사 성적을 예측하는 요인을 찾고, CPX 진단고사에서 하위군으로 선정된 학생들의 결정 요인을 찾고자 하였다.
학생들은 1, 2, 3학년 평점과 4학년 CPX 진단고사 성적 간에 유의한 상관성(0.25, 0.41, 0.59)을 보였다. 3학년 임상의학종합평가 성적이 4학년 CPX 진단고사 성적과 보인 상관성(0.29)은 기존의 연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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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에서 보였던 상관성에 비하여 약하였다. 반면 임상의학종합평가 성적은 1, 2학년 평점과는 강한 상관성(0.77, 0.80)을 보였다. 1, 2학년 평점은 대체로 기초 의학 및 임상 의학 지식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매겨지므로 이들이 4학년 CPX 진단고사 성적과 유의한 상관성을 보인 이유는 4학년 CPX 진단고사 13개 사례가 어느 한 과목에 치우치지 않고 포괄적인 범위의 임상의학을 다루고 있고, 환자 대면 진료에서 의학 지식은 가장 기본적인 도구적 지식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이는 필기시험 성적과 CPX 점수가 상관이 있다고 보고한 여러 선행 연구를 지지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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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임상종합평가는 1, 2, 3학년에 학습한 의학 지식을 망라하는 포괄적 객관적 평가이므로 1, 2학년 평점이 좋은 학생이 3학년 임상의학종합평가 성적이 우수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임상의학종합평가는 인지 영역 평가의 성격이 강한 시험으로 행동 영역을 평가하기에는 한계점이 있다. 본 연구에서 임상의학종합평가 성적과 CPX 진단고사 성적 간에 상관성이 미약한 것을 감안하면 향후 학생들의 성취도를 점검하여 진급 사정을 할 때는 임상의학종합평가뿐 아니라 행동 영역에 대한 평가를 통해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한편 3학년은 1,2학년 때 배운 의학 지식을 토대로 핵심 과목(내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에 대한 임상실습을 통해 임상 의학 지식을 견고히 하는 시기인데, 이때는 지필고사를 통한 평가뿐 아니라 임상실습에 대한 평가가 함께 이루어진다. 임상실습은 교수의 지도 아래 실제 진료 상황을 경험하게 하는 훈련 과정이고, CPX는 실제 진료 상황에서 문제해결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임상 장면의 재현이므로, 임상실습 점수와 CPX 점수 간에 유의한 상관성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선행 연구들에서는 임상실습 점수와 CPX 점수 간에는 유의미하지만 미약한 상관성에서 뚜렷한 상관성까지 다양한 결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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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3학년 평점은 필기고사 점수와 임상실습 점수를 고루 반영하므로 전체적인 학습능력을 대변하는 지표라고 할 수 있고, 본 연구에서도 3학년 평점은 4학년 CPX 진단고사 성적과 뚜렷한 상관성을 보였다.
바람직한 환자-의사 관계(PPI)는 환자 순응도를 높이고 궁극적으로 치료에 있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환자는 본능적으로 대인관계능력이 좋은 의사를 만났을 때 진료에 더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순응도의 향상으로 이어져 긍정적인 진료 효과를 내게 된다. 이전 연구들에서 PPI는 전체 임상수행능력과 높은 상관을 나타내며 CPX의 다른 세부평가 항목인 병력청취, 신체진찰 등과 달리 비인지적 영역 즉 행동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개인차에 기인한 부분이 크고 잘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고 하였다[
16,
17]. 즉, 병력청취나 신체진찰과 같은 인지 영역의 속성을 가진 분야는 훈련 및 교육을 통한 교정이 비교적 쉬운 반면 PPI는 단순 교정이 어렵고 피드백이 없을 때 약점이 지속되는 특성이 있다. 학생들이 2학년 시기에 평가 받은 환자-의사 상호작용 점수는 3학년 단순수기 점수, 3학년 CPX 점수, 4학년 CPX 진단고사 성적과 뚜렷한 상관성을 보였다. 4학년 CPX 점수 하위군으로서 피드백 대상자로 선정된 학생들에서 2학년 PPI 점수는 3학년 CPX 성적과 함께 하위군 결정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외국의 한 대학에서 시행된 연구에서 CPX 시험의 불합격 위험 요인으로 낮은 PPI 점수를 위험 요인으로 제시한 바 있는데[
18] 본 연구에서도 4학년 PPI 점수 하위군으로 선정된 학생들에서 1, 2, 3학년 시기의 낮은 PPI 점수가 모두 유의한 위험 인자임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서 학생들이 실제로 임상수행평가를 대비한 본격적인 평가를 받고 훈련을 시행하기 이전부터 형성된 PPI 점수가 최종 학년 PPI의 위험 인자로 작용할 수 있고, 4학년 CPX 성적 하위군의 결정 요인으로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교수가 바람직한 환자-의사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교육과 훈련의 중요성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인지 영역 평가가 주를 이루는 의과대학 저학년 교육 과정에서 행동 영역에 대한 교육과정을 저학년에 배정하여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진료 모듈을 개발하여 SP 혹은 모의 환자를 이용하여 환자-의사 관계를 훈련하는 방법을 고안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저학년에서 환자-의사 상호작용 점수가 낮은 학생은 이를 교정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여 환자-의사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전의 연구[
11]에서 단순수기시험은 임상 예절, 환자 교육 등 환자 진료 시 태도 영역을 평가할 수 없으므로 CPX 성적과 연관성이 약하고 CPX의 고유 영역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두 시험 모두 비인지적 영역, 즉 행동 영역의 평가라는 같은 범주에 속하는 평가이고, 완전히 별개의 분야라고 하기는 어렵다. 본 연구에서는 3학년 단순수기시험 성적과 4학년 CPX 진단고사 성적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였고, 다른 요인을 보정한 뒤 3학년 객관구조화진료시험 점수는 4학년 CPX 진단고사 성적의 유의한 예측 인자였다.
본 연구는 일개 의과대학에서 한 학년만을 대상으로 시행된 후향적 연구라는 제한점이 있다. 또한 CPX 평가가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고 수일에 걸쳐서 진행됨에 따라 학생들 간의 정보 공유 효과에 의한 영향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저자들은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표준 점수로 변환하여 분석하였고 원 점수 분석과 비교하여 동일한 결과를 얻어 정보공유 효과를 최대한 보정한 셈이다.
결론적으로 의과대학 4학년 학생의 임상진료시험 진단고사 성적은 3학년 임상실습 CPX 성적과 단순수기시험 성적과 관련성이 있어 인지 영역 평가보다 행동 영역 평가 점수가 설명력이 높은 것을 알 수 있었다. 4학년 학생 중 CPX 재교육 대상자를 선정하여 피드백 할 때 이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2학년 환자-의사 상호작용 점수와 3학년 CPX 성적이 중요하였다. 4학년 PPI 점수 하위군을 분류할 때 이를 결정하는 요인으로 1, 2, 3학년 시기의 낮은 PPI 점수가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향후 4학년 CPX 진단고사 성적과 의사국가고시 성적과의 연관성, 수련의 및 전공의 업무수행능력과의 연관성을 분석하는 연구가 있어야 CPX 형성평가의 평가목표 달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