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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J Med Educ > Volume 24(2); 2012 > Article
젠더가 여성수련의의 직업정체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

Abstract

Purpose:

This study aimed to analyze the experience of female trainees who were trained in hospitals after graduating from medical school, focusing on methods of representing their gender in training courses.

Methods:

We interviewed 8 trainees who had been trained in a hospital in Seoul and 4 faculties from June 2010 to October 2010. We analyzed their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and developed a vocational identity formation process to represent gender.

Results:

Gender was represented contradictorily in their training course, affecting their choice of specialties and interactions with patients. But, female trainees did not want to their being distinguished from their male counterparts with regard to being a good doctor to be influenced by meritocracy. It was difficult for them to bear children and balance work and family life due to aspects of the training system, including long work hours and the lack of replacement workers. Consequently, they asked their parents to help with child care, because hospitals are not interested in the maternity system. Female trainees did not consider being a doctor to be a male profession. Likely, they believed that their femininity influenced their professionalism positively.

Conclusion:

The methods of representing gender are influenced by the training system, based a male-dominated apprenticeship. Thus, we will research the mechanisms that influence gender-discriminated choices in specialties, hospitals, and medical schools and prepare a maternity care system for female trainees. Strategies that maximize recruitment and retention of women in medicine should include a consideration of alternative work schedules and optimization of maternity leave and child care opportunities.

서론

현재 의료계의 인적 구성은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의과대학생 중 여학생은 2009년 27.5%에서 2011년 29.6%로 약간 증가했으며, 여성 석사 비율은 2009년 48%에서 2011년 46%로, 여성 박사 비율은 2009년 30.1%에서 2011년 36.2%로 변화하였다[1]. 또한 한국여의사회 통계자료를 보면 2008년 10월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인턴 중 여성은 26.3%이며 레지던트 1년차 25.7%, 레지던트 2년차 35.2%, 레지던트 3년차 31.9%, 레지던트 4년차는 29.6%이다[2]. 연구자가 2010년에 서울 소재 4개 대형종합병원에서 수련하고 있는 여성인턴 비율을 조사한 결과 A병원은 46%, B병원 53.3%, C병원 49.1%, D병원 40.6%였다. 이러한 의료계 인적 자원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공의 수련규칙은 대부분의 전공의가 남성이었던 시절에 만들어진 틀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의사로서 독자적인 의료 행위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임상 지식과 경험 및 술기를 익히기 위해 인턴, 레지던트라 불리는 전공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3]. 이 과정 동안 수련의들은 의사로서 직업전문성을 연마하는 동시에 직업정체성을 형성한다.
근대사회에서 직업은 개인의 자아 인식에 기반한 권리로, 개인들은 그 직업이 요구하는 가치와 규범을 실현함으로써 직업정체성을 형성해 간다[4]. 근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은 매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받게 되는데 이때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가치와 규범이 일관성을 갖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서로 상이한 가치와 규범을 요구하는 역할들을 수행할 때 역할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현재 의료계의 시스템은 사적 영역의 활동을 담당할 아내가 있는 남성들이 다수를 차지했을 경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적 영역의 역할 수행을 요구받고 있는 여성들이 증가하면서 전문가로서 갖추어야 하는 가치와 규범이 어머니, 아내로서 갖추어야 하는 가치와 규범과 상충되는 경우가 많아 수련과정에 있는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역할갈등을 상당히 느끼면서 직업정체성을 형성해 가고 있다. 2001년 ‘모성보호관계법’ 개정을 통해 산전후휴가가 60일에서 90일로 확대되었음도 불구하고 의료계는 2007년에 비로소 임신 중인 여성 전공의들에게 90일간의 산전후휴가를 보장하기로 전공의 수련방침을 수정하였으며 둘째를 출산해 산전후휴가 90일을 초과하면 수련을 더 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2009년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체인력의 부족, 장시간 근무, 과중한 업무량 등으로 인해 90일의 법정 산전후휴가를 모두 활용한 여성은 산전후휴가 신청자의 18.9%에 불과하다[3].
기존에 의학교육 및 의료계에서 젠더는 여러 가지 이유로 간과되어 왔다. 첫째는 의학의 주요 관심사가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의학은 건강과 질병에 대한 가장 큰 영역으로 남성의 건강을 보았으며 남성이 치료의 주체인 동시에 대상이었다[4]. 한국여성정책개발원에서 실시한 암질환 연구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결과[5]에 의하면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 결과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고 있으며, 암 임상연구에서 실험 참가자의 성별을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연구 결과물에서 남녀가 분리되어 기술되는 경우가 거의 드물게 나타나고 있다. 두 번째는 ‘평등’보다는 ‘수월성’을 우선시하는 의료계의 뿌리 깊은 전통 때문이다. 다른 학문영역도 마찬가지이지만 의학에서 수월성은 환자의 생명과 연관되어 있다는 논리 하에 젠더의 다양성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가 수월성 안에서 함몰되었다. 그래서 의료계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성취를 이루어내는 데 많은 장애물을 갖고 있는데[6], 첫째, 여성들은 남성 동료, 병원직원 그리고 환자로부터 성차별, 성희롱을 경험하고 있다. 둘째, 육아에 대한 여성의 책임을 부과하는 성역할이데올로기가 유지되고 있어 남성 동료들보다는 여성들이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셋째, 남성중심적 의료계의 구조로 인해 여성들은 남성들과 다르게 의과대학과 수련기간 동안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의과대학 교수직으로 입문하는 비율이 매우 낮다.
이처럼 의료계에 진출하는 여성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젠더와 관련된 문제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련과정에서 젠더가 여성들의 수련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때 여성뿐만 아니라 의료계가 젠더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여성수련의들의 수련 경험과 젠더의 재현방식을 분석함으로써 그들의 직업정체성 형성 과정을 탐색하고자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성(性)의 다양성에 기반한 대학 교육과정의 변화, 병원의 조직문화 개선, 성인지적 교육 및 조직성과의 평가를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대상 및 방법

여성수련의들이 수련과정에서 직면하는 경험과 젠더의 재현방식을 분석하기 위해 본 연구는 서울 시내의 한 종합병원을 사례로 질적 연구를 수행하였다. 본 연구에서 언급하는 수련기간은 인턴, 레지던트와 펠로우 과정으로, 연구자는 서울에 소재하고 있는 의과대학 산하의 종합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있는 수련의 8명(여성 7명, 남성 1명), 수련과정을 끝내고 비전임교수직으로 갓 입문한 비정년트랙의 여교수 2명과 정교수 2명(여성 1명, 남성 1명) 등 총 12명을 면접 조사하였다. 면접대상자를 선정할 때 지역, 출신대학, 연령 보다는 전공, 결혼 유무, 자녀 유무를 고려하였다. 여성수련의 7명 중 4명은 기혼자이며 이 중 2명은 자녀가 있고 남성수련의는 기혼자로 자녀 2명을 두고 있었다. 이들의 전공은 비교적 다양한 편이어서 기존에 남성 전공영역이라고 여겨진 비뇨기과, 외과에서 수련 받고 있는 여성 수련의들도 있었다. 면담자로 남성수련의와 정교수를 포함한 것은 여성수련의들의 경험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고자 한 것이었으며 비정년트랙의 여교수를 선정한 이유는 수련 단계를 갓 벗어난 그들의 경험을 통해 수련 이후 여성의사들의 경력개발과정을 좀 더 심층적으로 조명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이 근무하고 있는 종합병원은 대학 부속 병원이어서 레지던트 및 펠로우 과정 때 대학원과정을 병행할 수 있으며 교수들 역시 대학원과정을 적극 권장하는 분위기이다. 따라서 이 병원에 있는 수련의들은 수련과정이 끝난 후에 개업의, 봉직의 뿐만 아니라 대학교수직도 함께 고려하는 편이다.
면담은 2010년 6월부터 10월까지 진행했으며 면접 장소는 그들이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서 이루어졌다. 면담시간은 개인별로 차이가 있으나 1시간 20분∼2시간 정도 이루어졌다. 수련의들의 경우 면담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 관계로 면접 초반에는 연구자가 준비한 반구조화된 질문지를 갖고 그들의 경험 등을 도출했으며 면접 중간부터는 면담자들이 서술하는 경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질문들을 추가해 나갔다. 반구조화된 질문지를 통해 공통적으로 질문한 것은 전공선택의 이유 및 상황, 인턴 및 레지던트과정 때의 경험과 어려움, 수련 이후 진로 및 경력개발 계획, 의사란, 자신이 되고 싶은 의사의 모습, 가정과 일의 균형 등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면담자들의 대답과 반응 속에서 자연스럽게 심화된 질문들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어 연구자는 사전에 면담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녹음해도 되는지에 동의를 얻고 그 내용을 녹취하였다. 연구자는 면담과정에서도 노트에 면담상황과 주요 키워드를 간략히 기술한 후 전사한 자료와 함께 이를 분석하였다. 1차 분석은 여성수련의들의 수련 경험을 시간상으로 분류해 보고 그들의 경험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두었다. 왜냐하면 대학종합병원이라는 동일한 공간에 근무하고 있지만 각자 처한 개인적 상황들이 다르고 자신들의 경험에 부여하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2차 분석은 그들의 경험 속에서 젠더가 어떻게 재현되고 있으며 이때 나타나는 모순이 무엇이며 왜 이러한 모순이 나타나는지에 초점을 맞추면서 직업정체성 형성 과정을 분석하였다. 분석을 하면서 여성 수련의들에게 젠더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때로는 무성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자신을 드러내는 축으로 활용하는 등 젠더로 인한 심리적 갈등을 많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러한 분석 단계를 통해 연구자는 젠더가 재현되는 방식의 변화에 따라 여성 수련의들의 직업정체성 형성 과정을 분석하였다.

결과

1. 나도 모르게 드러나는 젠더

의과대학에 진입할 때는 성별에 따라 전공 선호 현상이 뚜렷하지 않지만 전공을 선택하는 최종 순간에는 기존의 성별화된 분리 방식으로 전공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인다[7]. 면접에 응한 여성수련의들은 전공을 선택하기 전까지 ‘여자이기 때문에 ~을 할 수 없다’는 상황에 직면한 적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학력 중심 사회에서 대부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 왔던 이들의 교육경험을 고려해 보면 쉽게 수긍이 가는 면이다. 하지만 의과대학을 졸업 한 후 전공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성별이 전공 선택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라는 것을 간파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전공을 선택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할 요인이 동기와 흥미라고는 하지만 그것만이 전공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전공의 선발 조건을 보면 어디에도 성별에 따른 차별적 요소를 엿볼 수 없지만 암묵적으로 남성을 더 선호하거나 여성 인원을 이미 한정해 놓는 전공이 있다. 면담자들은 기존에 남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전공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남성 동료와 동일한 조건으로는 안 되고 그들보다 탁월해야 한다고 말한다.
  • 남자들이 여자들보다는 병원에서 일하는 게 더 편하죠. 교수님도 남자를 원하는 것 같고 병원도 남자들을 원하는 것 같고. 동료 남자보다 실력이 더 뛰어나야지 비교가 되는 거지. 만약에 동등한 입장이라면 전공의 선발과정에서 남자를 선호하게 되죠(펠로우 1년차의 여성수련의 4).

한국여자의사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123명 가운데 92.1%가 여성이라는 성별이 전공의 선발과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하였다[7]. 그러므로 기존에 남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전공에 여성들이 입문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는 토큰현상(tokenism)에 머물고 있다. 보통 토큰은 차별이라는 사회적인 비판을 피하기 위해 소수집단의 상징적 인물을 고용, 임명하는 관행을 의미하는데[8], 이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 조직이 여성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홍보하거나 이용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여성들의 권한이 증대되었다고 볼 수 없다. 한 조직에서 여성비율이 15% 이하일 경우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힘을 지니지 못하고 상징적으로 명목적인 지위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즉, 남성의 전공영역에서 상징적으로 여성 1~2명을 선발하는 것은 여성의 실질적인 권익증진보다 “우리 전공은 여성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소수의 여성은 동료나 교수로부터 인정받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남성 동료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여성 수련의가 극소수인 경우, 동료나 교수가 자신을 개인이 아닌 여성 전체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한 개인으로서 잘못을 하더라도 “여자여서 저렇다”는 식으로 확대 해석되어 여성수련의 전체의 이미지를 훼손시켜 이것이 여성을 선발하지 않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기존에 남성 전공영역으로 진출한 여성수련의들의 심리적 긴장감이나 불안감은 큰 편이다.
  • 저희 연차에는 저밖에 없었으니까 제가 혼자 있을 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거든요. 여자 혼자 있어서 제대로 일이 안 된다거나 그런 얘기를, 그래서 더 열심히 했고요. 그것 때문에 교수님들이 특별히 지적을 많이 하셨던 적은 없었어요(레지던트 4년차의 여성수련의 1).

한편, 여성수련의들은 환자들이나 교수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들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에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그들이 의사로서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딜레마 중의 하나는 자신의 전문성을 제대로 평가해 주지 않는 성차별적 편견에 기인한다. 또한 여성 수련의들에게 일을 부여할 때 “여자인데 할 수 있겠니?”하고 물어보거나 능동적으로 일을 하면 “여자인데 대단하다. 쟤는 꼭 남자애 같다”라는 평가를 내리고, 이와 반대로 사회성이 부족한 남성수련의에게는 “왜 이렇게 계집애 같나”라는 식으로 선입견을 갖고 판단한다. 한편 환자들은 간혹 여성수련의들의 전문성을 평가절하 한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의 낮은 지위가 의사-환자와의 관계를 좀 더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하지만 여성들이 의사로서의 권위를 갖는 데 방해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오하이오 의과대학의 Barbara Ross-Lee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환자는 때때로 여성의사로부터 받은 진단을 거부하고 남성의사들이 진단할 때 까지 여성의사들이 내린 진단 결과에 신뢰를 두지 않기도 한다[6].
  • 환자들은 저희들한테 언니, 아가씨 이러는데 남자수련의한테는 안 그러죠. 어쨌든 그런 것이 있어요. 교수님도 얘기하시는데 여의사들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더 프로페셔널 하게 보이게 옷차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세요. 아직 여의사를 다른 간호사 직종과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죠. 보조적인 느낌이 강해요(레지던트 4년차의 여성수련의 1).

2. 전문성 획득을 위한 젠더 감추기

우리나라 전문직 여성들의 직업정체성에 대한 기존 연구를 보면[9], 전문직 여성들은 강한 직업의식으로 무장되어 있고 자신의 일에 대해 보람을 느끼며 일을 통해 자아의식을 강화시키고 자신을 발전시키기를 희망한다. 여성수련의들에게서도 이러한 특성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결혼이나 자녀 유무와 상관없이 의사로서의 전문성 획득을 무엇보다 중요시하였고 비록 수련과정에 있는 피교육자이지만 자신들을 직업인으로 이름 지었다. 그래서 여성수련의들은 수련과정이 철저하게 전문성 향상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고 수련의의 성별에 따라 수련 내용에 차이를 둔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보았다. 그들은 수련과정에서 ‘여성’임을 부각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병원 내에서 남성 동료들과 동등한 자격을 획득하는 데 방해가 되거나 의학과 여성 사이의 거리를 넓힐 뿐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여성과 남성 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싶어 했다.
  • 병원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여자라는 것을 드러낸다, 만다가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것 전혀 생각 안 하죠. …… 제 생각에는 병원 시스템을 적용할 때 남녀에 차이를 두면 안 된다고 봐요. 어쨌든 우리의 직업은 의사인거고 환자를 봐야 되는 입장인데 환자를 볼 때 스케줄이 어긋나면 안 되거든요. 우선은 단체생활인데 나 한두 명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는 없다고 봐요. 룰이 필요하죠. 왜냐하면 직업이기 때문이죠(펠로우 2년차의 여성수련의 5).

  • 대학하고 병원 사회는 조금 달라요. 왜냐하면 레지던트는 배우고 트레이닝을 받는 입장이기는 하지만요 한편으로는 피고용자로서 일을 해야 되요. 정해져 있는 이것을 이 만큼의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의대하고 같다고 생각을 하면은 안 되는 거 같아요. 제가 볼 때는 트레이닝이 되게 힘들긴 하지마는 그 트레이닝을 거치지 않으면 원하는 어떤 모습으로 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현재 상황에서 트레이닝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면 예를 들어 이만큼 해서 어떤 보드를 받겠다면 힘든 과정을 겪어서 뚫고 나가야죠(레지던트 4년차의 여성수련의 2).

이처럼 면담자들은 “여성만을 위한 제도”, “여성성의 노출”을 통해 남성 동료들과 다른 여성만을 위한 기준을 만들어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에 거부감을 갖고 있으며 성별에 상관없이 동일한 기준 하에 경쟁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였다. 의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실력이 말해 주는 것뿐이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수련의들은 기존의 의료계에서 요구하는 능력주의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내면화하고 있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오전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돌아가는 일상의 병원업무 이외에 자신의 전문성 개발을 위해 12시간 이상의 근무 및 야근을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였으며 그것에 적응해 나갔다. 만약 이러한 과정을 견디지 못하면 전문가로서 의사가 되기 힘들다고 보았다.
이러한 여성수련의들의 직업정체성에는 수련직의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수련과정은 철저하게 위계적 서열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연차에 기반한 서열 그 자체는 의학 전문성에서 나오는 권위인 것이다. 이러한 조직문화로 인해 수련조직 내의 의사소통 방식 역시 상명하달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연차가 낮은 여성수련의들이 직면하는 문제를 위 연차에게 제기하는 것이 쉽지 않고, 문제제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문제로 인식된다. 따라서 연차가 올라갈수록 전문성에 기반한 위계질서가 강화되는 수련의의 조직문화에서 여성수련의는 무성(gender blinded)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자신의 전문성을 강화시키면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인지하게 된다.

3. 갈등, 딜레마로 다가오는 젠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성수련의들은 병원의 수련체계에서는 의사로서 전문성 획득과 여성성이 대치된다고 인식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출산, 육아 등에 대한 고민을 공론화하는 데 제약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출산과 육아는 사적 영역의 개인문제로 자리매김 된다. 출산과 육아의 시기는 의사로서 경력 요구가 가장 심해지는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에 여성수련의들은 남성 동료들과 다르게 결혼과 출산의 시기, 육아에 대한 갈등이 크다.
  • 저는 아이 얼굴도 거의 보지 못하면서 제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교수님은 제가 100% 올인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세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펠로우 1년차의 여성수련의 6).

수련 도중에 출산을 할 경우 노동 강도가 센 근무환경에서 태아의 건강이 걱정이 되기도 하고 임신이나 출산휴가로 인해 동료들의 업무 강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심리적 부담도 크다. 전문의를 취득한 후 출산할 경우에는 다음 단계로 이직을 해야 하는 시점이어서 임신한 상태에서 면접을 보는 것이 힘들고 이직하자마자 출산하는 것도 쉽지 않다.
  • 보통 여성 레지던트들 사이에 족보코드가 있어요. 이렇게 가는 게 가장 편한 길이다 하는 게 있는데, 2년차 때 결혼하고 3년차 때 첫 애를 낳고 펠로우 했을 때 둘째를 낳아야 그게 가장 옆 사람 괴롭히지 않고 뭐라고 하나. 욕 덜 먹고 지나가는 방법이라고 보통 얘기를 해요. 실제로 액팅을 많이 하는 연차에서 애를 출산을 하면 주변 동기한테 너무 일이 많이 가거든요. 그래서 애를 낳는 포인트의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되요(비정년트랙의 여교수 3).

업무분담에 대한 교실 내 역학관계 때문에 3개월로 보장되어 있는 산전후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여성비율이 높은 교실과 그렇지 않은 교실에서 정반대의 양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다른 직종과 다르게 여성수련의 비중이 높은 교실에서는 출산휴가는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만 동시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업무분담이 높아지기 때문에 순번을 정해서 출산하면 좋겠다는 암묵적인 강압이 들어오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여성 수가 적은 교실에서는 산전후휴가로 인한 업무분장의 갈등이 적기 때문에 3개월 출산휴가를 더 쉽게 허용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제로 남녀 의사 간 첫 아이 출산시기와 자녀수에 차이가 있다. 미국의 소아과협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남성은 첫째 출산연령이 29세인 반면 여성은 30.6세이고, 둘째 아이의 출산 시기는 32.9세이며 남자는 평균 2.6명의 자녀를 두는 반면 여자는 평균 1.7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10]. 미국 외과의사들의 현황에서도 남성 외과의사의 91,7%, 여성 외과의사의 75.6%가 결혼을 했고 남성보다는 여성 외과의사들이 자녀를 원하지 않거나 나중에 갖기를 원하는 비율이 높아서 수련기간 중 남성의 62.4%가 첫 아이를 가진 반면 여성의 32%만이 수련 중 첫 아이를 출산했다[11].
아직 우리사회에서 육아의 책임은 여성이라는 전제가 강하게 있기 때문에 일-가정의 양립에 대한 여성수련의들의 심리적 갈등은 매우 크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여성수련의들에게 있어 출산과 육아는 일정부분 병원 조직 및 수련시스템에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병원시스템에서는 출산 및 양육이 여전히 여성 개인의 문제로 여성화되고 있다. 따라서 여성의 친족관계가 양육문제 해결을 위한 불가피한 현실적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경제적 부담을 안고서 보모를 통해 육아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여성수련의들이 다른 일반 취업여성들에 비해 공공보육시설을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당직 및 주말 근무를 비롯해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병원에 머물러야 하는 수련의들의 생활 리듬에 맞는 공공보육시설이 극히 미약하기 때문이다. 또한 병원과 연계된 탁아시설이 미흡한 것도 그 원인이 된다.
육아에 대한 부모님의 지원은 여성수련의들이 일에 몰두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여성수련의들에게 있어 육아는 힘들고 어렵지만 일단 믿을 수 있는 대체 양육자가 나타나면 일은 선택이 아닌 전략의 문제가 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성수련의들은 강한 직업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육아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더라도 이 시기만 잘 넘기면 평생 커리어와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여성수련의들의 능력을 성과로 전환하기 위해 대체인력 확보, 육아휴직 그리고 병원 내 보육시설 확충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11].

4. 의사로서 직업정체성 찾기

수련과정이 끝나갈 무렵에 여성수련의들은 자신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국면에 직면한다. 하지만 진로를 결정하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며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데 영향을 주는 것 중에 하나가 남성수련의에 비해 여성수련의가 출산, 육아, 경제적 측면 등 고려할 요소들이 많고 그것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2008년 12월에 우리나라 의사협의회에 일반의로서 의사면허를 신고한 사람 중 여성은 16,218명(20.6%)이며 이 중 봉직의가 28.9%로 가장 높고, 다음으로 개원의 21.9%, 대학교수 0.8%이다. 면접에 응한 면담자들은 개업의보다 봉직의와 교수직을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여기에는 시간을 융통성 있게 활용할 수 있고 경영에 대한 부담이 적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면담자들이 교수직을 선호하지만 실질적으로 여교수의 비율이 낮을 뿐만 아니라 의과대학의 교수는 진료, 연구, 교육 등 다중역할을 해야 하고 개인시간이 전혀 없이 지내는 선배 여교수들의 삶을 보면서 ‘과연 내가 저렇게 살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을 많이 갖고 있었다. Majorie et al. [12]이 언급하듯이 여성의사들은 직업적으로 최고를 추구하는 동시에 살림도 해내는 원더우먼으로 살고 있다. 이를 다시 말해 원더우먼으로 살 자신이 없으면 의료계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대변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저는 지금 아이가 있어요. 그래서 생각해야 할 것이 많다보니 미래가 더 불투명한 것 같아요. 외국에 나가서 더 배우고 싶고 교수직으로 가고 싶은데, 현재 나의 상황에서 가능할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요(펠로우 1년차의 여성수련의 6).

여성수련의들이 진로를 쉽게 결정내리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로 의과대학에 입학한 이후 전문의를 취득하기까지 약 11년 동안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성찰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이 여성수련의들에게만 나타나는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형성하면서 왔다기보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레지던트 4년차의 여성수련의 1)라는 한 면담자의 말처럼 자신을 성찰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다음으로 일과 가정 간의 균형을 찾기가 힘들다는 점도 여성수련의들의 진로결정을 유예시키는 원인이 된다. 제3의 양육자를 통해 육아가 해결되기는 했지만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는 가운데 가족, 교수 등 주변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부과하는 높은 기대는 그들의 심리적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한편, 수련과정이 끝나갈 때쯤 여성수련의들이 경험하는 것 중에 하나는 독립에 대한 두려움이다. 수련과정에서는 담당 교수가 최종 책임자여서 자신은 한 발 뒤로 물러나 있는 상황이지만 수련 이후에는 전문의로서 환자를 만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려움이 남녀 수련의 모두에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여성수련의들이 남성수련의들보다 강하게 갖고 있다. 이는 Majorie et al. [12]이 언급했듯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를 덜 받고 있으며 여성은 남성보다 자신감이 낮고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높다. 또한 동일한 분야의 이상적인 개업의들에 비해 자신이 더 여성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실행해야 할 역할에 대해 더 많은 불안감을 갖고 있다.
이러한 갈등과 혼란 속에서 여성수련의들이 체득하는 것은 의사라는 직업이 남성에게 적합한 직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에 자신들이 거리두기를 하고 싶어 했던 여성이 갖고 있는 특성이 의사의 직종에 더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면담을 한 교수가 “의사는 책임감 있는 공직”(남자정교수 1)이라고 말하듯이 의사직은 이타주의를 매우 강조한다. 면담에 응한 여성수련의들이 의사를 “희생과 봉사”, “책임과 돌봄” 을 특성으로 하는 직업으로 규정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 여성수련의들이 남성수련의들보다 환자에 대한 이해, 공감능력이 뛰어나 환자를 병 그 자체만이 아닌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측면이 강한 편이죠(레지던트 3년차의 남성수련의 8).

미국에서 수행된 연구 결과도[13] 이러한 측면을 뒷받침해주고 있는데, 여성 의사들이 환자들과 의사소통할 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어려움에 처한 환자들을 향한 강한 책임감을 느끼며 환자와 좀 더 평등한 관계를 유지한다. Oggins et al. [14] 역시 여성이 타인을 돕는다거나 유대관계를 맺고 사회 참여를 하는 등 사회적 가치가 있는 일에 동기 부여를 받고 공동체 의식이 높기 때문에 인간과 관련된 일에서 여성이 더 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Bilal [15] 연구에서 드러나듯이 환자에 대한 개인적 감정을 통제하면서 개방성, 친절, 민감성, 열의와 같은 정서가 환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기는 하지만 의사의 스트레스와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낮추는 원인이 된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고찰

지금까지 여성수련의들의 경험과 젠더의 재현방식을 분석해 봄으로써 그들이 어떻게 직업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지를 살펴보았다. 젠더의 재현방식은 단순히 시간적 순서에 따라 변화된다기보다는 그들의 삶 속에서 다층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모순적인 측면을 갖고 있었다. 의사라는 직업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젠더는 수련의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드러나기도 하고 전문성 획득에 방해가 되는 요소로 간주되어 거리를 두는 요소로 간주되는가 하면 의사로서 직업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젠더의 재현방식은 병원의 근무조건, 수련시스템 등과 같은 사회구조적 요인과 부모, 남편, 교수 등 의미 있는 타자들의 지지와 기대와 같은 개인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져 나타난 것이고 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몇 가지 측면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첫째, 의과대학에 진학하는 여학생 수가 증가함에 따라 여성레지던트의 비율이 30%로 증가하고 그들이 선택하는 전공영역도 다양해지고 있지만 성별에 따른 전공 선택 경향은 매우 느리게 변화하고 있다. 미국의과대학협의회(Association of American Medical Colleges, AAMC)의 2008년 통계자료를 보면[16], 2005년 이후 여성 전공의의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반면 남성 전공의의 수는 천천히 감소하고 있다. 또한 미국 수련의들의 전공별 남녀 편중현황을 보면 여성은 산부인과(78%), 소아과(69%), 유전학(66%), 피부과(61%)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남성은 신경외과(88%), 정형외과(87%), 흉부외과(87%), 비뇨기과(78%)에 집중되어 있다. 이처럼 여성수련의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전공별 성정형화가 해소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Bickel [10]은 의과대학 교수들이 성정형화된 틀 속에서 학생들을 평가하는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Troppmann et al. [11]의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 외과의사들(82.5%)이 남성 외과의사들(77.5%)보다 다시 태어나도 외과를 선택한다는 비율이 높다. Ku [17]의 연구를 보면, 의과대학 초기에 전공포부는 성 그 자체에 의한 선호도에 영향을 받지만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실제 전공을 선택할 때는 직무 가치, 일과 가정의 양립, 의미있는 타자의 후원과 멘토 등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전공별로 성별 편중현상을 보이는 이유는 수련의의 개인적 성향뿐만 아니라 의과대학, 병원 그리고 전공별 조직문화의 차이와 선발과정에서의 성차별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여러 국면으로 나누어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가령, 의과대학 단계에서 보면 학생들이 의학공부를 시작하는 단계부터 전공을 탐색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련의 선발단계에서는 각 전공별로 선발하고자 하는 인재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고 이를 기반으로 선발기준을 정립하면서 비공식화된 성차별적 요소가 없는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경력개발단계에서는 기존에 남성영역이라고 간주되어 온 전공영역에서 성공한 여성 이야기를 축적해 나감으로써 이들이 여학생뿐만 아니라 남학생에게도 역할모델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역할모델이 매우 부족하다면 전략적으로라도 여성 리더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여학생들에게도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병원 조직문화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의료계에서 여성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병원 수련시스템의 변화는 매우 느리다. Morahan & Bickel [18]은 여성들이 성공하는 데 있어 장애요인으로 병원 조직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이상적인 의사에 대한 현재의 관점이 21세기에 적합한 의사인지를 질문한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구분되고 자신의 개인적 시간 없이 병원에 올인 하는 의사, 그것은 남자의사들이 가정에서 여성(어머니 혹은 아내)에 의해 후원받고 짧은 인간수명을 특징으로 했던 19세기 동안 진화해온 관념이다. 21세기 의사들은 성별을 떠나 직장 안팎에서 높은 개인적 삶의 질을 보장받기를 원한다. 따라서 19세기 공사영역의 구분에 기반한 의사의 역할 기대는 능력 있는 여성들이 잔존하고 그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데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도 드러났듯이 공사영역의 이분법적 인식에 기반한 조직문화에서 임신과 출산은 병원조직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여성수련의들은 여전히 눈치를 보며 임신시기를 조절해야 하고, 육아는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여성수련의 개인의 문제로 인식되는 동시에 의사로서의 전문성 획득에 걸림돌로 인식되고 있다. 병원조직에서 임신과 출산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결정과 행위로 보이지만 사실 철저하게 병원의 조직문화와 수련시스템에 제약을 받는 것이다.
셋째, 의과대학 및 병원에서는 젠더를 인적자원의 다양성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의학교육에서 인적 구성원의 다양성 확보와 관리는 유능한 의료계의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의학 및 의료분야에서 여성의 증가와 지위 향상은 일시적으로 집단 간에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으나 동시에 구조적 자산의 증가를 의미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이질적 속성을 가진 집단은 다양한 정보와 네트워크, 경험, 기능, 시각의 차이를 갖기 때문에 보다 가치 있는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다양성을 배척하지 않고 존중하는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보다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성과 창출이 가능하다. 따라서 의료계에서도 잠재력 있는 여성을 배제시키거나 그들의 공헌기회를 제한하지 않고 이들을 조직의 인적 자산으로 끌어들이고 활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여성수련의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직장보육시설, 보육비 지원 등 모성보호제도 뿐만 아니라 수련환경이 현실화될 필요가 있다.
넷째, 의과대학은 여학생들의 경험을 모니터링 하는 동시에 성인지적 교육과정을 설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앞서 제시된 것처럼 여성수련의의 경우 자신을 성찰해 볼 기회 없이 계속해서 전진해 온 경우가 많다. 전공을 선택할 때 대부분의 면담자들이 여성으로서 당면하게 될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기 보다는 그것으로부터 끊임없이 거리두기를 하려고만 한다는 점에서 의과대학 때부터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탐색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객관적으로 여성이 직면하는 의료계의 상황이나 딜레마를 조망할 기회를 학생들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Hur & Lee [19]의 연구에서 나타났듯이 남학생과 여학생의 발달 수준에서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좀 더 건강한 범위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Verdonk et al. [20]은 언어(의과대학생은 당연히 남학생이라고 가정하는 것), 맥락(남성과 여성 환자들이 발생하는 상황), 내용(교육과정에 포함되거나 배제되는 내용) 분석을 통해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 건강과 질병에 대한 지식과 프로페셔널한 태도에 성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젠더를 통합한 9개의 기초의학 블록과정을 운영하였다. 그 결과 학생들은 건강과 질병에서 젠더를 고려하기 시작했고 의료 활동에서 성별에 따른 차이를 적용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과대학 교육과정에서는 젠더를 고려해 교육과정을 설계한 경우가 극히 드물며 여성의사로서 직면해야 되는 문제들을 탐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매우 부족하다. 성인지적 교육과정과 자기탐색 프로그램, 여학생 멘토링시스템, 여학생을 위한 진로개발캠프 등은 남녀 학생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 이러한 교육과정 및 프로그램을 통해 의과대학 학생들은 성역할사회화와 성정형화가 의사에 대한 자신, 환자, 사회의 기대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여학생들은 경력개발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남녀 간의 불평등을 인지하고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안목을 형성할 수 있고 남학생들은 다양한 사람들과 협력해 일하는 공동체라는 인식을 갖고 나와 다른 맥락에 있는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며 협력하는 방식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의료계가 경쟁을 통한 수월성 확보를 매우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그 경쟁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것이 성별에 따라 어떤 효과를 야기하는지를 성인지적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성인지적 관점이란 여성과 남성이 지닌 생물학적, 사회문화적 경험의 차이에 의해 서로 다른 이해나 요구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특정 개념이나 정책 등이 특정 성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은지, 성역할 고정관념이 개입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검토하는 관점을 의미한다. 남성과 여성은 삶의 경험과 상황이 다르고 사회경제적인 지위에서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의 특성 및 차이를 반영함으로써 정책의 효과가 양성 간에 형평성과 평등을 가져오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젠더라는 렌즈를 하나 더 씌워 의료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하나의 정책 및 프로그램이 모든 집단에게 동일한 효과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같은 병원에 있는 수련의들이 동일한 수련과정을 경험한다고 해서 유사한 직업정체성을 확립해 갈 것이라는 가정은 의료계에 있는 여성들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오히려 가정은 여성들이 오랫동안 의료계의 주류였던 남성의사들의 직업정체성을 성공적으로 습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의 근거를 제공하거나 여성적인 의사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텍사스 의과대학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남녀 학생들은 비슷한 정신건강과 삶의 만족수준을 갖고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차후에 여학생들이 더 의기소침하고 더 분노에 휩싸여 있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더 낮다[6]. 따라서 여성들에게 기존의 경쟁시스템에서 남성과 동등하게 경쟁을 해서 이길 자신이 없다면 여성에게 유리한 전공분야로 진출하라거나 일도 잘하고 가정도 지키고 싶은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고 일면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하겠다.
본 연구는 서울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련 받고 있는 제한된 숫자의 수련의들만을 면담조사 했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향후 여러 병원의 수련의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경험을 탐색하는 연구가 지속될 필요가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의학이 인지되고 가르쳐지는 방식에 대한 연구가 병행될 필요가 있다. 의학언어 자체가 이미 남성중심적이라면 단순히 의과대학에 여성들이 진입하고 전문의가 되는 과정을 촉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학에 성정형화된 개념을 찾고 그것을 수정해 나가는 작업이 병행되지 않으면 여성은 남성중심적 의과대학 및 병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심리적 긴장감을 유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Funding: This study was supported by the research encouragement award at the 26th Medical education Conference in 2010 funded by the Korean Society of Medical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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